빗물로 세척한 70만원짜리 가방 '불티'…연매출 700억 [긱스]

입력 2023-02-27 09:02   수정 2023-02-27 14:05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16일 스위스 뮌징겐에 있는 가구업체 USM 본사 공장. 다양한 크기의 가구 패널들이 공장 천장까지 높게 쌓여있었다. 이 패널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가구 변형과 확장이 가능하다. 어린이용 캐비닛을 아이가 큰 뒤엔 책상으로, 몇 년 뒤엔 TV서랍으로 다시 조립해 쓸 수 있는 모듈형 가구다.


스위스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의 취리히 공장. 직원들이 유럽 각지에서 실려 온 방수포를 분류하는 모습이 보였다. 유럽 전역을 돌며 수거해온 50톤 규모의 버려진 트럭 덮개와 천막이다. 프라이탁은 이 방수포로 가방을 만들어 연 700억원 가량의 매출을 낸다.

유럽에서 재사용 비즈니스 기업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순환경제’ 바람이 불고있다. 단순 재활용 개념을 넘어 최대한 오래 제품을 사용하고 공유, 대여, 수리, 개조하는 방식의 생산·소비모델이다. 제품 수명을 늘리는 기술과 수리를 위한 회수, 폐기물 활용 등이 순환경제의 핵심이다.

프라이탁의 엘리자베스 이세네거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트럭 방수포로 만든 가방을 팔고, 수선·교환하는 플랫폼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모듈가구로 유명한 USM의 알렉산더 쉐러 최고경영자(CEO)는 “재사용은 USM의 중요한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유럽 스타트업들도 재사용 비즈니스에 뛰어들고 있다. 프랑스 스타트업 카바이오스는 자체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로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인 로레알과 함께 화장품 용기를 만들었다. 독일 스타트업 크래프팅퓨처는 벼 도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쌀겨로 그릇을 제작해 390만유로(약 5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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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취리히 프라이탁 공장 옆 공터 바닥에 붙어있는 문을 열면 땅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내려가면 42만ℓ규모의 거대한 지하 물탱크에 물이 찰랑대고 있다. 공장 지붕을 통해 모은 빗물을 파이프로 내려보내 저장하는 장소다. 매일 5000ℓ의 빗물이 가방으로 만들기 전 트럭 방수포를 씻는 데 쓰인다. 세척에 필요한 물까지 최대한 재사용하겠다는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전방위적 '재사용 경제'
한국경제신문이 한-스위스 수교 60주년을 맞아 방문한 스위스 산업 현장에서 확인한 대표적인 순환경제의 모습이다. 과거엔 수명이 끝난 제품이나 소재를 그대로 폐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재사용 기술을 적용해 다른 제품, 원료로 만들거나 기존 제품을 수리·교환해 사용 기간을 늘려주는 비즈니스가 유럽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13일 찾은 프라이탁 공장 한켠엔 유럽의 각 도시에서 들어온 중고 가방이 쌓여있었다. 사용자가 프라이탁 가방을 한참 쓰다가 망가지면 본사에서 수선한 뒤 다시 보내준다. 버려진 트럭 방수포로 만든 가방의 평균 가격은 20~70만원. 겉면에 얼룩이 있어도 소비자들은 앞다퉈 이 가방을 찾는다. 엘리자베스 이세네거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흔치 않은 색깔의 트럭 방수포를 보고 가방으로 만들어달라는 고객 제보도 온다”고 했다. 사용자끼리 가방을 바꿀 수 있는 교환 플랫폼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 로잔에 있는 커피기업 네슬레 본사에선 커피박(커피찌꺼기)을 펠릿 형태로 만들어 에너지원으로 쓴다. 스위스 정부와 협업해 수거 시스템을 구축, 운영하고 소비자가 배출하는 커피박을 모아 연료로 만든 후 공장을 가동하는 식이다. 네슬레 본사 내에 원료 수거부서와 에너지 기술을 담당하는 연구팀을 별도로 두고 있다.

모듈형 가구로 유명한 USM의 뮌징겐 본사 사무실은 과거 공장이었던 곳을 개조했다. 1961년에 세운 공장을 추가로 계속 이어붙이며 확장해 쓰고있다. 변형과 확장이 편한 기능성 프레임으로 건물을 지었는데, 현재 USM 재사용 가구의 아이디어 시작점이 됐다. 알렉산더 쉐러 최고경영자(CEO)는 “필요에 따라 프레임을 추가로 붙이는 방식으로 오래 쓸 수 있다는 게 USM 가구의 핵심”이라고 했다.
스타트업들도 ‘돌진’

혁신기업들도 재사용·재활용 시장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유럽의 초기 혁신기업들이 모여있는 스위스 바젤 혁신센터엔 재사용이 안되는 콘크리트 대신 폐지, 흙, 나무 등 친환경 재사용 소재를 활용한 시험용 주택이 지어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건축회사 헤르조그앤드뫼롱의 알렉산더 프란츠 건축가는 “건축 원료는 공유, 재활용, 수리 및 재처리를 통해 활용된다”고 강조했다. 로잔연방공과대(EPFL)에서 스핀오프한 테크 스타트업인 알마텍의 루크 블레카 공동창업자는 “지속가능성은 가장 중요한 테마 중 하나”라고 했다. 알마텍은 수소를 이용해 탄소배출량을 대폭 줄인 여객선을 개발한 회사다.



글로벌 재활용산업의 시장 규모는 2019년 3300억달러(약 434조원)에서 2027년 5137억달러(약 677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경영에서 지속가능성이 화두가 되면서 대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지고 기술 발전으로 성장성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등을 통해 고품질의 폐기자원을 분리하는 방식 등이 시도되면서다.

독일 프랑스 등 인근 유럽 국가에서도 첨단기술로 무장하고 재사용 시장으로 돌격하는 스타트업들이 많다. 지난해 독일에서 투자를 많이 받은 스타트업 상위 10곳 중 3곳이 재사용 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관련된 회사였다. 나무와 옥수수 등으로 대체 플라스틱을 제작하는 트레이스레스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우유부산물 활용 스타트업인 락팁스는 1300만유로(약 18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유럽연합(EU)의 재활용 사용 의무 규제와 산업 육성책이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직 한국의 재활용 기술 수준은 80점(EU를 100점으로 봤을 때 기준)수준으로 일본(95점)은 물론 미국?중국(85점)보다도 낮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빠르게 성장하는 재활용시장에 한국 기업들이 과감하게 투자하기 위해서는 규제 합리화와 기술개발, 폐자원 확보 인프라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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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한가지 더

폐배터리, 폐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이 글로벌 재활용 시장의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전망됐다. 삼일PwC 보고서에 따르면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는 2019년 17억달러(약 2조2400억원)에서 2027년엔 154억달러(약 21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 31.8%다.

전기차 배터리의 교체주기가 통상 5년이고, 2020년 후 전기차 판매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을 고려할 때 2025년부터는 전기차 폐배터리 시장이 빠르게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배터리 생산량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18.5%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스위스의 글렌코어인터내셔널, 벨기에 유미코어, 캐나다 러머터리얼즈 등이 배터리 재활용 시장의 선두주자들이다. 테슬라 같은 완성차 업체나 LG화학, 삼성SDI 등의 배터리 제조사들도 폐배터리 재활용 분야에 돈을 넣고 있다.

글로벌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규모도 2019년 368억달러(약 48조5000억원)에서 2027년 638억달러(약 84조원)로 커질 전망(연평균 성장률 7.4%)이다.

PwC는 “한국은 아직 화학적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에서 초기 단계지만, 정부 차원의 규제 혜택과 기술 개발을 위한 기업들의 투자로 빠른 속도로 기술이 상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9년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규모는 1조6700억원 수준인데, 2027년엔 2조8400억원 규모로 불어날 것이란 예상이다.

폐가전 재활용 시장도 2027년까지 연평균 11.9%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음식물폐기물은 연평균 5.6%, 폐금속은 4.0%, 폐지 시장은 3.9%씩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취리히·로잔·뮌징겐·바젤(스위스)=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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